웹 서핑중에 haruair 님의 블로그에서 좋은 내용의 글을 발견하고 허락받고 여기에 옮겨왔다.


덕분에 XY 문제 라는 단어도 배우고 질문자와 답변자일때 각각 어떻게 얘기해야 부드럽게 원하는 정보나 대답을 들을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모름을 인정하고 배우기가 점점 힘들어 지지만 그것도 나이 먹는 과정이라는 걸 이해하고 늘 노력하도록 해야 겠다.. 


원문은 http://haruair.com/blog/1908 에서 볼 수 있다.


위 사례는 커뮤니티에서 질문과 답변을 할 때 적절한 사례지만 대고객 서비스를 할때는 제대로 연결했는지 묻지 말고 먼지를 불어 보라고 얘기하세요 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왜냐고 되물어보는 이유

당신에게 왜냐고 되물어보는 이유

점심 먹으며 글을 읽다가 참 인상적인 내용의 포스트를 보게 되어 허락받고 글을 옮겨봤다. 꼭 이 글에서 얘기하는 특정적인 상황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겪는 상황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원문은 Why ask why? – Ned Batchelde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파이썬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보스턴 파이썬 모임의 지인이든, IRC 체널에서의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든 말이다. 이 상황에서 간혹 뜬금없게 오해할 때가 있다. “왜”냐고 질문하는걸 오해하는 경우도 여기에 포함된다.

답을 찾기 위해 돕는 동안, 종종 질문자에게 “왜?”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두개의 파이썬을 랩탑에 설치해야 한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왜 두번째 파이썬이 필요해요?” 라고 물어볼 것이다. 그럼 다른 사람이 그 글을 보고 웃게 되는데, 다른 사람은 내 말 뜻을 “너는 두번째 파이썬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적인 반응이다. 왜냐고 되물어보는 것은 비난처럼 느껴진다. “왜 XYZ로 했나요?”라고 말을 하면 “이 멍청이, 넌 XYZ로 하지 말았어야해.” 라고 이해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가 왜냐고 되물어보는 것은 정말로 이런 의도에서다. “나는 당신이 XYZ로 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길 원합니다.”

영어는 위와 같은 이유로 어려운 경우가 있다. 특히 IRC처럼 비언어적 표현이 없는, 온전히 문자로만 전달되는 상황에서 특히 그렇다. 이런 질문을 누가 봐도 부드럽다 느낄 정도로 물어보기 위해서는 단어를 더 추가해야 한다. 예를 들면,


왜 다른 파이썬을 설치해야 하나요?

이보다 다음처럼 되묻는 것이 낫다.


왜 다른 파이썬을 설치해야 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거든요.

그러므로 내가 만약 왜냐고 되물어본다면, 이를 개인적인 뜻으로 듣지 말자. 난 정말로 무슨 이유에서 그런건지 알고 싶을 뿐이다.

만약 내가 정말 당신의 잘못을 꾸짖기 원했다면, “당신은 XYZ로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XYZ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라고 말했을 것이다.


때로는 사람들이 내가 왜냐고 되물어보는 이유를 알게 될 때, 오히려 그 질문에 발끈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고 고집하고, 왜 단순한 질문에 간단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가에 대해 의아해한다.


내가 되물어보는 경우의 75% 가량은 내가 큰 그림을 알게 되고 나서 질문의 답변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책을 찾다가 막다른 길에 닿았을 때, 사람들은 막다른 길에 닿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질문을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고 그들이 더이상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 이유는 문제의 처음부터 다시 출발해서 살펴보지 않기 때문에 더 나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더 나은 길을 찾는걸 돕기 위해서는 그 질문의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왜냐고 되물어보는 과정을 통해서 문제가 나타나기 이전에 선택했던 부분에 대해 살펴보고, 이러한 방법으로 전체적인 문제를 살펴보는 과정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문제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게 된다는 것은 함께 더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더 큰 문제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물어보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힘들다. 간단하게 선택한 첫번째 과정이 두번째 과정을 필요보다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도와주는 사람이 더 큰 그림에 대해 물어볼 때, 질문하는 사람을 면박 주려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해결책을 찾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물어보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XY 문제 이라는 표현을 쓴다. X라는 문제에 대해 Y라는 해결책을 선택했는데, 이게 동작하지 않을 때, X라는 문제점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Y라는 해결책이 왜 안되는가에 대해 물어본다는 말이다.

몇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문제점과 해결책의 관계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아주 일반적인 상황이며 자신의 질문에 대해 고집을 부린다.

그래서 때때로 질문하는 사람은 대안을 빨리 알아채지 못한다. 또 때로는 질문하는 사람이 답하려는 사람보다 시간을 안쓰려고 명확하게 질문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나고, 답변하는 사람들이 XY 문제와 같은 이유로 화가 나면 다시는 질문에 답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만약 누군가 왜냐고 물어보거나, 당신은 “XY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할 때, 그들은 당신에게 최적의 해결책을 찾는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다. 기분 나빠하지 말자. 우리는 힘겹게 학습하고 있고 복잡한 상황을 극복하려고 함께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도 알면서 잘 안되는 부분이라 글을 읽으면서 뜨끔뜨끔 했다.

위에서 이야기한 XY 문제는 대다수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쉽게 발생한다. 단순하게 보면 별 이야기도 아닌데 의외로 직간접적으로 자주 겪는다. (내가 질문자 일 때도, 답변자 일 때도 있었던 것 보면 정말 흔한 상황이다.) 유대가 모자란 상황에서도 발생하지만 친밀한 경우에도 이와 같은 오해는 종종 일어난다. 그게 친구와도 나타나고, 직장 생활에서, 학교에서, 어디서든 쉽게 나타나는 일이다.

배움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 부끄러움 없이 지금 내가 아는 부분을 모두 보여주고 물어봐야 빠르게 답을 얻을 수 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란 이야기가 있다. 아는 척 숨기고 있는다면 평생 배우지 못한 상태로 살게 되는 것과 같고 모르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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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왜라는 질문에 솔직해지자. 타인에게도 나에게도.